반복되는 힘의 방향
Gallup사의 강점 검사를 마치고 화면에 떠 있는 다섯 개의 단어를 한참 바라보았다. 배움, 절친, 성취, 지적사고, 심사숙고. 이 단어들은 예전에 교보문고 데이터가 나를 '박학다식한 탐색형'이라 불렀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남겼다. 분명 내가 반복해온 방식인데, 내가 의식해온 나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결과는 통계적으로 정리된 패턴일 뿐이다. 숫자가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되 '왜' 그렇게 했는지는 말해주지 않듯, 강점 리포트 역시 내 행동의 요약본일 뿐 그 의미까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이해가 먼저인 사람 (배움 & 지적사고)
`배움`이 1위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내가 여전히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에 닿기 위해 '이해'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와도 왜 그런지 모르면 찜찜함을 느끼는 나의 본능이 나를 기술 서적 너머의 인문학으로 이끌었다.
`지적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답답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타인의 언어를 내 문장으로 통과시키기 위한 의식이다. 생각이 생각을 부르고 그 끝에서야 비로소 행동으로 옮기는 이 습관은, 내가 세상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가속 장치와 브레이크 (성취 & 심사숙고)
의외였던 것은 `성취` 테마가 상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스스로를 야망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쉬지 않는 사람이었다. 완료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일이 줄어들면 또 다른 일을 만든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성취는 방향을 묻지 않고 단지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내가 경계해온 ‘관성으로 일하는 상태’가 어쩌면 이 성취의 엔진이 방향을 잃었을 때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심사숙고`가 브레이크로 작동한다. 위험을 먼저 보고, 시작보다 점검을 앞세운다. 이 조합은 나를 신중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제자리에 묶어두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나를 소개하게 두는 법 (절친)
`절친` 테마는 내 삶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한다. 나는 많은 사람과 얕게 연결되기보다 적은 사람과 깊게 연결되는 방식을 택해왔다.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 "시간이 나를 소개하게 내버려 두겠다"고 했던 말은 사교성의 부족이 아니라,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증명되길 기다리는 그것이 내가 체화해온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점은 정체성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 강점 검사를 통해 깨달은 것은, 강점은 나를 규정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원래 신중하니까", "나는 원래 생각이 많으니까"라고 말하는 순간, 강점은 나를 가두는 관성이 되고 변명이 된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용기를 가진 자를 '허물 없는 사람'이라 했다. 나에게 강점이란 내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힘이며, 그 힘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약점을 보완하는 대신 강점을 예리하게 만들라는 조언은 솔깃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해내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마도 균형 잡힌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강점이 나를 설명해주었다고 해서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나를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 이해한 힘을 어디에 쓸 것인지 묻는 일이다. 그것이 서른을 앞둔 내가 미래의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친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