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나를 소개하게 내버려두겠다
고등학교 입학은 나에게 완전한 단절이었다. 연고지를 벗어나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 홀로 서게 되었다. 누구나 그 나이에는 또래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서두를 수가 없었다.
교생선생님이 오셨던 어느 봄날, 점심을 함께했다. 선생님이 물었다. "너는 왜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않니?" 나는 답했다.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애써 소개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간이 나를 소개하게 내버려두고 싶어요."
그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심장이 뛰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런 나를 어떻게 남에게 설명할 수 있나. 게다가 한번 말로 규정하면, 그 규정에 맞춰 행동해야 할 것 같았다. 스스로 만든 틀에 스스로 갇히는 꼴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포장하는 건 거짓이다. 차라리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게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십 년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이것이 나의 아비투스의 뿌리일 것이다.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되 뿌리를 인정하라 -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실력을 알고 싶었다
내 실력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일찍 사회로 나섰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쓸모 있는지, 나라는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막연한 자신감도, 막연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알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충실히 시작한 것만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실력이 늘었고, 사고의 범위가 넓어졌다. 학교에서는 정해진 문제에 정해진 답을 찾았지만, 사회에서는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했다. 답이 여럿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때로는 답이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실력이 쌓이니 일이 늘었다. 인정받는 건 기뻤지만, 무게도 따라왔다. 일이 일을 불렀고 눈 뜨면 출근, 잘 때만 귀가. 주말도 휴일도 없었다. 그 시간이 나를 성장시킨 건 분명하다. 한계라고 생각한 지점을 넘었고,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들을 해냈다.
그러나 선물만 남지 않았다. 생각 없이 관성으로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왜 하는지, 이게 내가 원하는 일인지 되돌아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성장하고 있지 않았다. 같은 자리를 빠르게 돌고 있을 뿐이었다.
삶을 주의 깊게 구성할수록 위로 소비가 덜 필요하다 -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흩어져 있던 생각들
이 책을 읽으며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였다.
저자는 말한다. 아비투스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태도이며, 심리·문화·지식·경제·신체·언어·사회라는 일곱 개의 자본으로 구성된다고. 성공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이미 성공한 자들의 집단에 소속되어 그들의 아비투스를 체화해야 한다고.
새로운 집단에 들어갈 때는 "삼가는 태도로 그곳의 관습을 가치판단 없이 흡수하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읽는 순간, 고등학교 시절 교생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던 게 아닌가. 애써 나를 소개하지 않고, 시간이 나를 드러내게 두는 것. 과도한 열정 없이, 과도한 기대 없이, 그저 머물며 흡수하는 것. 내가 본능적으로 선택한 방식이었다. 물론 보호본능이자 합리화일 수도 있다.
저자는 또 말한다. 진정한 자신감은 과시와 지위 상징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신과 타인에게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과시하고, 증명이 필요 없어진 그 지점에 성공이 있다고.
이 구절에서 머릿속이 정리됐다. 내가 무의식중에 추구해온 것이다. 말로 포장하지 않고, 행동으로 증명하되 그 증명마저 의식하지 않는 상태. 나는 아직 거기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는 건 분명해졌다.
자신과 타인에게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어 시기심과 조급함이 없고, 여유와 초연함이 있으며 애써 과시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본질을 쉽게 파악한다. -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길 원하는가?
동시에 이 책은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중산층과 최정상의 차이를 구분한다. 중산층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전문성을 쌓고, 성과를 내고, 자기를 홍보한다. 최정상은 직관으로 결정하고, 전체를 조망하며,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부름받아 움직이되 입증하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중산층의 방식에 있다. 성과를 내고, 실력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 애쓴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자리일 뿐이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다음으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머물러 있을 생각도 없다.
함정이 있다. 관성이다.
일에 몰두하며 성장했지만, 관성에도 빠졌다. 생각 없이 일하게 됐고, 그 효율에 기대어 편해졌다. 관성은 성장의 적이다.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면, 더 잘하게 될지 몰라도 더 높이 가지는 못한다. 다시 성장하려면 관성을 깨야 한다. 무의식적 반복을 의식적 수련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도 아비투스의 성장 과정이다. 아비투스는 한 번 형성되면 고정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어야 한다.
어떠한 아비투스도 돌에 새겨지지 않았다. -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나의 아비투스
책을 덮고 정리한 나의 아비투스다.
첫째, 나를 애써 설명하지 않겠다. 시간과 행동이 말하게 두겠다. 단, 수동적 기다림이 아니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능동적 현존이어야 한다.
둘째, 일곱 개의 자본을 균형 있게 확장하겠다. 지금까지는 지식자본과 경제자본에 치우쳐 있었다. 심리자본의 회복력, 문화자본의 깊이, 사회자본의 질, 신체자본의 건강, 언어자본의 절제에도 투자해야 한다.
셋째, 관성을 경계하겠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넷째, '입증이 필요 없는 상태'를 향해 나아가겠다. 충분히 쌓아서 오는 여유가 아니라,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내면의 성숙이다.
어떻게 기억될까
저자는 묻는다. "내가 떠나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아직 답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그 답을 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살면서 행동으로 써야 한다는 것. 나의 아비투스는 무엇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로 정의될 것이다.
시간이 나를 소개하게 내버려두겠다던 그 고등학생은 십 년이 넘은 지금도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다만 이제는 안다. 시간이 나를 소개하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관성으로 흘려보낸 시간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밀도 있게, 진정성 있게 채운 시간만이 나를 대신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