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번역된 나
데이터로 번역된 나를 처음 마주했다.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익숙하지도 않았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분명 나인데, 평소에 스스로 인식하는 나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신간 선호도 100%. 베스트셀러 선호도 0%. 이 두 숫자의 대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새로 나온 책만을 읽고, 많이 팔린 책은 전혀 읽지 않는 사람. 데이터만 놓고 보면 그렇다.
베스트셀러를 의식적으로 피한 적은 없다. 다만 책을 고를 때 순위를 본 적이 없을 뿐이다. 서점에서, 혹은 누군가의 글에서, 혹은 읽던 책의 각주에서 다음 책을 만났다. 한 권이 다음 한 권을 불렀고,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읽는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월 4.7권. 같은 레벨의 평균 11.3권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숫자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적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래서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빠르게 읽는 사람이 아니다. 밑줄을 긋고, 덮고, 다시 펴고, 며칠을 같은 문장 앞에 머문다. 한 권을 읽는 데 들이는 시간이 긴 만큼 그 책이 나에게 남기는 것도 다르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지금도 버리지 못했다.
데이터가 말하지 못하는 것
최근 분야별 비율을 보면 인문 17%, 경제/경영 14%, 자기계발 12%, 소설 7%, 시/에세이 3%다. 1위인 인문조차 17%에 불과하다. 어느 한 분야가 압도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이것을 "박학다식한 탐색형"이라 불렀다.
그런데 왜 인문학이 1위인가. 코드를 짜는 사람이 왜 철학과 역사와 심리학 책을 펼치는가.
만든 것이 잘 작동할 때, 이게 정말 잘 만든 건지 아니면 그저 작동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기준을 기술 안에서 찾으려 했지만, 기술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기술 서적이 아닌 책들에 손이 갔다.
읽는 것과 사는 것 사이
월 4.7권이 적다고 느낀 순간, 나는 이미 숫자의 논리에 끌려가고 있었다.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압박. 그러나 중요한 건 권수가 아니다. 읽은 것이 삶을 바꾸었는가. 밑줄 친 문장이 행동이 되었는가.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바꾸지 못했다. 밑줄을 긋는 순간에는 다짐이 생기지만, 책을 덮으면 일상이 다시 덮인다. 다만 한 가지,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내 생각을 숨기는 습관을 의식하게 되었다. 의식한다고 바로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모르고 있을 때와는 달랐다. 읽은 것이 삶을 바꾸었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면,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나는 여전히 읽는다. 읽고 덮으면 잊는다. 그렇게 잊혀진 책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글로 옮긴다. 남의 머리로 들어온 것이 내 언어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내 생각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가능성일 뿐 보장은 아니다. 그래도 읽기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 블로그를 쓰는 이유다.
데이터가 설명하는 나
결국 이 데이터가 설명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남들이 많이 읽는 책보다 자기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 빠르게 소비하기보다 느리게 소화하는 사람. 하나의 분야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전히 탐색 중인 사람. 그러나 내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나도 아직 모르겠다. 이 숫자들을 들여다보는 동안 깨달은 건, 데이터가 나를 정확히 설명하는지보다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불편하다는 것이다.